#1

 

세상엔,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아. 스티븐 A 스타페이즈 씨는 그 말을 밥 먹듯이 했다. ‘밥 먹듯이, 하루에 세 번, 적당한 목소리와 적당한 말씨로 거르는 날 없이-라는 뜻이다. 높낮이는 일관적이고, 경박하지 않은 정돈된 말투, 세상의 모든 풍경을 관조한 사람인 양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딱 적당한 말이라고 느껴졌다.

매일 먹는 밥이라도, 먹는 순간은 기분이 다르다. 스티븐 씨가 그 말을 할 때도 그랬다. 매일 하는 말이라도, 말하는 순간은 그 말에 실린 감정이 달랐다. 어느 날은 날카롭고, 어느 날은 편안하고, 어느 날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이 말했다.

세상엔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아.

그건 가끔은 꼭 유언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의 입장으로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감을 잡기 힘들었다. 숙연하게 듣자니, 그는 들뜬 듯이 말한다. 가볍게 듣자니, 그는 무겁게 말한다. 매일 하는 말이니 무시를 할까? 하지만 그는 무시할 수 없게 말한다. 실은, 이것이 그에겐 나름대로 중요한 사안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은 세상이, 그에겐 아주 골칫거리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혹은, 단순히 자신의 투정을 받아줄 사람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세상엔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아.

 

렇게 말하는 그를 이해해야 할까. 아니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다.


#2

 

소파에 앉아 있는 스티븐 씨는 때때로 숨을 쉬는 박제 같다.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을 때도 그랬고,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도 그랬고,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고 있을 때도 그랬다. 그의 동작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엔, 앉아있는 모습에서 어떤 서늘함이 느껴졌다. 망자에게만 오는 서늘함. 언젠가는 잠에서 급하게 일어나며 그는 어쩌면 혈계의 권속일지도 몰라!” 라고 중얼거린 적이 있다. 당연하게도 그럴 리가 없다.

 

 

#3

 

스티븐 씨는 최근에 고백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곧잘 들러 꽃을 사오곤 했던 꽃집의 아가씨로부터. 그 아가씨는 얼굴이 작고 새하야며 옅은 주근깨가 있다고 한다. 재프 렌프로는 그 아가씨를 봤다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크라우스 V 라인헤르츠도 몇 번 그 가게에 들러서 꽃을 샀다고 했다. 그 아가씨에 대해선 그들의 증언만 들으면 되었다. 아가씨가 웃는 모양새는 꽤 고운 편이고, 스티븐 씨와 눈을 마주치면 눈을 잠시 깜빡였다가 .’ 하고 짧은 탄성을 내뱉은 후 부끄러운 듯 웃었다고 한다. 스티븐 씨도 그것은 퍽 귀엽게 여기고 있던 모양이었다. 재프가 스티븐 씨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짓궂은 농담을 날리고 있는 걸 보니.

하지만 스티븐 씨는 허탈하게 웃음을 흘려 보내며 이제 그 꽃집엔 다시 갈 수 없겠어.” 라고 했다. 모든 이들이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었다. 그러나 추궁은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꽃집 아가씨와의 해프닝은 그렇게 미지근하게 마무리되는 듯 했다.

 

어느 나른한 오후였다. 스티븐 씨는 유리병에 꽂힌 꽃들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갈 수 없어.” “가서도 안 돼.” 평소엔 애지중지하며 만질 생각은 일절 하지도 않던, 예쁜 붉은 색의 꽃을 어루만지면서 말이다! 스티븐 씨의 손가락은 꽃잎 위에서 소극적으로 나돌더니, 이내 단단한 얼음을 팍 쏘아버렸다. 꽃잎은 얼어 버렸다.

 

예의가 아니야.”

 

스티븐 씨는 약간은 불쾌한 것처럼 말을 씹어 뱉었다. 뜻밖에, 얼어버린 꽃잎은 꽤 아름다웠다.

 

#4

 

스티븐 씨는 자신의 능력을 꽤나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걸 얼려버리는 능력을. 그는 간혹 자신의 능력을 본래 형태를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냉동으로 된 박제가 자택에 하나도 없다는 건 꽤 아이러니하다.

 

잠에 들려 하면 스티븐 씨가 얼려버린 꽃잎이 눈 앞에 떨어졌다. 여느 꽃잎처럼 살랑살랑한 모양새가 아니라, , 쿵쿵. 혹은 톡, 톡톡.

 

가만히 내버려두면 알아서 생명을 얻고 화려하게 피어날 꽃잎을 그가 .’ 얼려버린 이유는 대체 .’ 무엇이란 말인가? 스티븐 씨는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예의라고 하면, 어떤 것에 대한 예의란 말인가? ‘.’ 자신과는 다리 어떠한 사명도 없고, 꽃을 팔고 사며 즐거움을 느끼는 소박한 소녀에 대한 예의? 혹은, 목표 말고는 어떤 것도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던 자신에 대한 예의? !

 

꽃잎이 이렇게 많이 떨어지다니! 방금 스티븐 씨가 유리병의 꽃을 다 얼려버린 게 틀림없다.

 

#5

 

재프 렌프로는 스티븐 씨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동료로서 신뢰를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언젠가 재프에게 스티븐 씨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이에 그는 아주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그 사람, 기분 나쁩니다.” 라고 중얼거렸었다.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순 없었다.

 

말은 여러 겹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론 어떤 것도 알 수 없다. 한 겹 한 겹 벗겨 나가며, 그 말의 가장 아래쪽에 무엇이 있느냐를 확실하게 알아야 그의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재프는 온갖 감정의 찌꺼기를 문장으로 겹겹이 덮어버렸다. 그래서 명확히 알 순 없지만, 어쩐지 그 감정은 불쾌함에 가까웠다. 단순한 혐오는 아니었다. 어떤 사건이 분명히 있다! 이대로 재프 렌프로를 보내기엔 너무 찜찜하다! 하지만 그 즉시 재프를 수소문하진 못했었다. 그가 용무가 끝났으면 일 보고 오겠다며 어제 만난 여자들과 자러 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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